김춘산
현재의 녹둔도
《계곡집(谿谷集)》과 《난중잡록(亂中雜錄)》 속의 녹둔도
우리는 한 달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지도상에 존재하지만 우리 손에 닿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파랑새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들어본 구전 설화 같기도 한 한반도 역사의 작은 무대 녹둔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 있다. 러시아나 청국과의 국경 분쟁이나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연결되어 언급되어선지 녹둔도라는 단어에서는 늘 변방의 척박함과 고단함이 바람과 함께 묻어 있다. 이는 조선 중기 사대부들의 고전 문헌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는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폭넓은 독서를 하여 성리학적 사유 속에만 갇혀 있지 않고 박학다식하며 개방적 성향을 갖고 있던 저자는 경전과 성리서는 물론이고 제자백가 및 도가ㆍ불가ㆍ의복(醫卜)ㆍ풍수ㆍ천문ㆍ지리 등에 두루 통달하였다.
《계곡집(谿谷集)》은 그의 시문집이다. 계곡선생집 제13권에는 조선 선조대에 무신이었던 완령부원군(完寧府院君) 이경록(李慶祿)에 대한 비명(碑銘)이 실려있는데 여기에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있을 때 일어났던 녹둔도 전투에 대하여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의 경내에 있는 녹둔도(鹿屯島)가 형승지(形勝地 요해처(要害處))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번호(藩胡)들에 의해 불법으로 점거되고 있었으므로 공이 이들을 쫓아내고는 밭을 갈게 하였다. 그리고는 가을철에 공이 관리와 사민을 거느리고 수확하러 갔는데, 번호가 여러 부족들을 이끌고 공격을 가해 왔으므로 공이 힘을 다해 싸우며 물리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살상전(殺傷戰)이 벌어졌다.
당시 오랑캐의 병력은 많았던 반면 공의 휘하에는 고작 2백 명의 군사밖에는 없었는데, 근처에 있던 진(鎭)에서 제때에 출동하여 구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랑캐를 물리치기는 하였지만 우리 군사들 역시 사상자(死傷者)가 많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공은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결과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몸이 되었다.
이듬해 시전(時錢)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공이 선봉(先鋒)이 되어 오랑캐 하나를 뒤쫓았는데, 그 오랑캐가 달아나면서 활을 쏘아 공이 서너 군데나 몸에 화살을 맞고 말[馬]도 화살에 맞았으나 끝까지 추격해 잡고야 말았다. 그런데 때마침 타고 있던 공의 말이 땅에 넘어지자 오랑캐가 마침내 군사를 돌려세워 공을 포위해 왔는데, 오랑캐 하나가 칼을 빼 들고 곧장 덤벼드는 것을 화살 한 대로 거꾸러뜨렸다. 이때 오랑캐 하나가 또 앞에 나서자 공이 다시 죽이고는 마침내 그 말을 뺏어 타고 군진(軍陣)으로 귀환하였다. 이에 군중(軍中)에서 그 용맹에 탄복하면서 한비 장군(漢飛將軍 한(漢) 나라 이광(李廣))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공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역시 이때의 동상(凍傷)으로 인하여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공이 이에 지위가 회복되어 나주 목사(羅州牧使)에 임명되었는데, 말하는 이들이 나주는 큰 고을인 만큼 문리(文吏)를 등용해야 한다고 논하는 바람에 체직되어 김해 부사(金海府使)에 제수되었다. 이곳에서 능력있다는 평가를 받다가 그만두고 돌아온 뒤 도총부 경력(都摠府經歷)이 되었다. 이때 다시 나주 목사에 임명되자 논하는 자들이 여전히 예전의 주장을 고집하고 나왔는데.............“
또, 지금부터 약 4백 년 전 전라도 남원에서 유학자이며 무용(武勇)을 겸비한 의병장(義兵將)으로 이름이 높은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선생이 저술한 야사(野史)인 《난중잡록(亂中雜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주청사(奏請使) 유홍(兪泓)을 명나라 서울로 보내어 《대명회전(大明會典)》을 보내달라고 청하게 하다.
가을 9월. 함경도의 시전(時錢) 번호(藩胡)가 도적 오랑캐들을 모아 경흥(慶興) 경내에 있는 녹둔도(鹿屯島)에 들어와서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약탈하곤 했는데, 육진(六鎭)의 장수들이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다. 작년에 육진에서 이 섬에 둔전(屯田)을 마련하고 수백 호의 백성을 옮겨다 놓았었는데, 이때에 와서 도민(島民)이 다 함몰된 것이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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