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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둔도가 그려진 경흥부지도

                     <녹둔도에 대한 프랑스측 정보>

 

또한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서구 열강들도 조선 변방에 대한 각국 세력지형 변동에 대한 정보에 민감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들도 있다. 다음은 프랑스 외무부 문서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서 러시아와 청국, 조선의 상호 관계 변화 및 녹둔도에 대한 소문을 다루고 있다. 

 

한국근대사자료집성 14권 프랑스외무부문서 4 조선Ⅲ·1890

정치공문 1888~1896 조선 1890 권3 콜랭 드 플랑시 씨 

 

제목 【66】 러시아의 조선 보호국화 소문 

문서번호 정치국 극동과 제157호 

발신일 1890년 6월 10일 ( 1890년 06월 10일 ) 

수신자 리보, 등등 

 

장관님,

지난달 중 천진에서는 조선이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청국의 다른 지방으로까지도 소문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한반도 남부의 전략 지점을 점령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이와 동시에 일본 신문들은 일본 해군이 동 시베리아 영토에서 가까운 섬을 점령하였다고 보도했으며 영국 전함 두 척이 며칠 전부터 엔진을 가동하고 통지를 받자마자 출항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영국 제독은 우려할 만한 전문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소문들은 매우 모호하지만 청국의 항구뿐만 아니라 도쿄를 상당한 흥분에 빠뜨렸으며 셴키비츠(SienKiewiez) 씨는 제게 사실 여부를 급히 물었습니다.

유럽 신문들이 이 소식을 조속히 전달할 것이므로 제가 수집한 정보를 지체하지 않고 각하께 보고드립니다.

이번 사건은 제가 1889년 9월 21일자(제67호) 외무성에 보고 드린 바 있는 일년 전에 발생한 녹도(Dear Island)에 대한 소문의 반복인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이 현재 청국과 종주 관계를 단절하고 러시아의 보호를 수락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 문제에 대해 청국 주차관도 매우 평온한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러시아 함대는 한반도 남부의 어떤 지역도 방문한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극동의 언론의 특파원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신빙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문제의 섬은 북쪽에 위치한 두만강(du fleuve Tumen) 어귀의 녹둔도(Nok-toun to)로 그 지역 수도인 블라디보스톡(Vladivostock)이며 소유권이 양도되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함께 협의한 청국 대표에 의하면 이 곳은 1860년부터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으므로 자신이 판단하기에는 이러한 정보는 현안으로 삼을 필요도 없으며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식적인 조선 지도와 프랑스 선교사 지도 그리고 일본 참모부 지도를 참고한 결과 이 주장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고 드립니다. 지도에 녹둔도는 조선 영토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60년 북경에서 이그나티에프 장군(Gal Ignatief)과 공친왕(Prince Kong)이 체결한 조약문에도 이 섬을 러시아에 양도한다고 명시한 구문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녹둔도가 조선에 귀속되어 있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후 대륙과 분리되었던 두만강 어귀의 일부분에 섬의 모래가 충적되면서 대륙과 연결되어 이제는 시베리아에 붙은 일종의 곶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한 시점은 제가 모르지만 이처럼 지형의 변화가 발생한 이후로 러시아는 자연 현상에 의해 대륙에 붙어버린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은 몇 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해결책을 찾아 현 상황의 근본적인 우려를 종식할 수 있을까요? 현 상황에 페테르스부르그(Pétersbourg) 정부가 만족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목격하고 있는 현 소요 사태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각하께서도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콜랭 드 플랑시

파리의 외무부 장관 리보 각하께, 등등

 

한국근대사자료집성 14권 14권 프랑스외무부문서 4 조선Ⅲ·1890

정치공문 1888~1896 조선 1890 권3 콜랭 드 플랑시 씨 

 

 

제목 【79】 조선 정부의 차관 도입 계획에 대한 청국의 반대 및 르장드르 장군의 실패 

문서번호 정치국 북부과 겸 극동과 제167호 

발신일 1890년 7월 16일 ( 1890년 07월 16일 ) 

수신자 리보, 등등 

 

장관님,

러시아가 북쪽뿐만이 아니라 남쪽으로도 개입하려고 한다는 극동 언론의 우려할 만한 기사에도 불구하고 대왕대비의 승하 후 서울은 상중에 들어가 모든 공무가 중지되어 평온한 상태입니다. 제가 예전에 보고 드린 바대로 거문도(해밀턴항)의 경우 특별히 우려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며 녹둔도의 경우에도 현재로서는 외무아문과 러시아 공사 사이에 어떠한 협상도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 공사도 열강의 권위에 걸맞게 공관을 꾸미기 위하여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영국 영사관도 의회의 승인을 받아 역시 공관 신축에 들어가 영국 총영사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기후가 조금 더 낳은 제물포로 피서를 갔습니다. 미국 공사도 얼마 전에 도착하여 대부분의 외국 대표들처럼 공관 공사에 바쁘며 다른 문제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현재의 조용한 분위기는 더위와 이 같은 전반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르장드르 씨의 귀국으로도 상황은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르장드르 장군은 차관 도입과 관련된 재무 협상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장드르 장군은 서울로 돌아와 조선 정부에서 제공한 넓은 공관에 무기한 머무를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르장드르 장군이 데니 씨의 후임으로 이희 전하의 고문을 맡을 것으로 간주해도 될 것입니다.

르장드르 장군이 추진하던 차관 계획에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이 반대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각하께 보고 드린 바 있습니다. 청국에서는 이홍장을 통해 천진 주재 조선 통상사무 독리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서울 주재 청국 주차관을 통해 조선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북양대신 이홍장의 요구로 청국 정부는 열강 주재 청국 대표들에게 청국은 조선의 차관 계획에 항의해야 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주재국에 알리도록 공문을 발송했습니다..........................................제가 입수한 다른 정보에 근거해 볼 때 도쿄 내각은 청국의 주장에 답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청국이 간섭을 강요하기 위해 들었던 모든 변명들에 은둔의 왕국과 체결한 일본의 각종 조약문을 근거로 반박하였습니다.

미국 공사는 이 문제에 대해 워싱턴으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과도한 주장’이라고 표현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자료집성 14권 14권 프랑스외무부문서 4 조선Ⅲ·1890 

제목 【108】 상해 후파오지의 조선 관련 기사 내용 

문서번호 정치국 극동과 제189호 

발신일 1890년 12월 10일 ( 1890년 12월 10일 ) 

수신자 리보, 등등 

 

장관님,

한반도에 특사를 파견하면서 청국 언론이 조선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상해에서 발간되는 ‘후파오’[滬報]지는 조선이 방어 태세를 갖추기 위해 도입해야 할 일련의 방안을 검토하는 기사를 최근 게재했는데 각하께 요약해서 보고드릴 필요가 있다고 사려됩니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우선 기원전 1154년경에 중국 역사상 최초로 조선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 발생한 변화를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몇 차례 중단되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 조선은 중국의 조공국이었으며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선 이래로는 완전히 관계가 고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은자의 나라인 조선이 외국 상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게 된 사건들, 즉 1882년의 반란과 1884년의 반란은 서울 주재 청국 외교관의 경계로 실패했고 조선 지리에 대해 짧은 설명을 덧붙인 후 신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동북아시아의 관문이다...............녹둔도(1890년 6월 10일자 공문 제157호 참조) 사건을 보면 이웃 국가로서 러시아의 의리를 가늠할 수 있는데, 러시아는 이미 1887년부터 동시베리아 철도 공사를 시작했다. 이 노선은 5년 후에 완공될 것이며 그러면 열차들이 생 페테르스부르그(St. Pétersbourg)와 블라디보스톡 간의 28,000리(약 11.000킬로미터)를 15일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열차를 이용해 러시아 군대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군대를 동원해 의욕적으로 사할린섬(l’île Saghalien)을 식민지화하여 이곳에 전략적인 거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조선은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조선이 자체적으로 제대로 방어를 해야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반드시 청국의 일개 지방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내정 문제와 관련, 자치와 자유를 유지하면서 청국의 조공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향후 조정의 악습을 개혁하고 광범위한 광물 자원과 통상 그리고 군대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된다면 우리가 강제로 조선을 정치적으로 밀접하게 묶으려고 하지 않아도 그리고 조선에 청국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도 조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해군력을 증강하고 길림(Kirin) 지방과 장백산(Tchang-pei chan, 크고 흰 산)의 유명한 지역들을 난공불락의 지역으로 만들기만 하면 충분할 것이다. 랑의 과 해군을 증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백산(크고 흰 산)과 길림성 등 주요 지역이 난공불락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국이자 조공국인 조선도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콜랭 드 플랑시

파리의 외무부 장관 리보 각하께, 등등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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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08 17: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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