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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경암 곽한소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5 - 경암(敬菴) 곽한소(郭漢紹)
  • 기사등록 2022-10-05 13:31:36
  • 기사수정 2026-05-23 23: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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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선생 존영 - 청주곽씨세거공원 수정판(2017년 발행) 92쪽 (출처 : 敬菴全集)


   공의 자는 윤도(允道)이며 스승 면암(勉菴)을 오래도록 공경하고자 자호(自號)를 경암(敬菴)이라 하였다. 고종 임오 1882년 2월 15일에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진대곡에서 아버지 곽정현과 어머니 전의 이씨에게서 3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곱 살에 동몽선습을 깨우치고 통사(通史)를 배우기 시작하고 열두 살에 대유(大儒) 송고(松皐) 선생의 문하에 들어 맹자, 당송팔대가의 글을 공부하던 중에 왜병의 침범으로 출생지를 떠나 을미년(1895) 봄에 충남 온양으로 이거하였다. 나이 열여섯 살인 1897년9월17일에 부안 임씨와 일가를 이루면서 종중의 대소사에 출입하게 되었고 1899년4월부터 족보편찬사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열아홉 살인 1901년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문하에 입학하여 스승의 지고한 사랑으로 학문의 깊이가 측량하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랐고 이 때 팔도의 석학 제선비들과의 폭 넓은 사귐이 평생 동안 교유하는 학우로 이어지게 된다.


  1901년 9월부터 년말까지 충청과 전라도로 스승을 배행(윗사람을 모시고 따라감)하였다. 

족형(族兄) 한일공(漢一公; 郭漢一)이 의병장으로 항일하다 1906년 10월 8일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자 안타까워하며 시를 남긴다.

 

英男氣略出西原    기상과 책략이 뛰어난 남아가 청주(淸州)에 나서

芝浦松灘蓋有源    송탄(松灘)과 지포(芝浦) 같은 근원이 있네

討復誰令擔大義    그 누가 명했던가 대의(大義)를 담당하여

勉翁節下倡爲元    면암(勉菴)의 깃발 아래 먼저 창의했는데

分隅不必一營連    나눌 필요가 없어서 한 진영에 연하였으며

先入洪府後玉川    먼저 홍주(洪州)에 들었다가 나중에 옥천(玉川)에 갔네

苦血復讎終未遂    괴롭게 피를 흘렸으나 끝내 원수를 갚지 못하고

屈伸秪欲問蒼天    모든 행동을 삼가 푸른 하늘에 묻고자 했네.

 

「족형, 장암 의사 한일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10월 8일」

(足兄, 聞壯菴義士漢一被執 丙午十月初八日)

 

*註1 (芝浦) : 조선조 문신 청주인(淸州人) 곽지흠(郭之欽)의 호, 사헌부 집의

*註2 송탄(松灘) : 지포(芝浦)의 아들 대징(大徵)의 호

 

                 - <청주곽씨 대종회 100년사>와 <청주곽씨세거공원>수정판 中



김춘산기자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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