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최익현의 <창의토적소>초본(독립기념관 소장).
곽한소가 기초한 것으로 인정되는 문건이다.
<나라와 가문을 위한 삶, 곽한소>中 (출처 : 敬菴全集)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홍주의병에 뒤이어 최익현(1833-1906)님과 임병찬(1851-1916)님이 1906년 4월 13일(음력)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키셨으니 이것이 태인의병이다.
거의(擧義) 초기에는 최면암님과 동지들, 그리고 백성들의 순혈의 일심으로 기세를 잡는 듯 했으나 전주 진위대가 진압하러 오면서 분위기는 바뀌었고 동포끼리 상쟁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면암 최익현님이 해산을 명령하시기에 이른다. 곧바로 최익현님은 진위대에 붙잡혀 대마도에 유배되시고 단식과 발병 끝에 11월 17일 순국하셨다.
이 격랑의 시간들 속에서, 창의를 준비하며 격문을 나르고 청원청국서 등을 기초하는 등 발이 부르트도록 분주히 실무를 담당했던 곽한소님은 스승과 함께 대마도에 끌려가지 못함을 통탄하며 홍주의병 재기를 위하여 몸부림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곽한소님은 철저한 은둔생활 속에서 면암문집을 발간하고 일대기를 쓰는 등 스승의 유훈을 받드는 일과 가문의 존엄을 수호하는 일에만 전념하셨다.
그리고 6년 후 바다건너에서 일왕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일제의 협박과 강요를 철저히 거부하며 순국을 택한 스승의 기개와 그 스승의 장례에서 울부짖던 수만의 애도인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식민지 도학자 곽한소님에게 일왕의 죽음은 과연 어떤 감상을 일으켰을까?
睦仁之死强加服 목인의 죽음에 강제로 상복을 입게 하는데
白黑雖殊稱以服 백과 흑이 비록 다르지만 이름은 상복일세
彼是國讎非我主 저 사람은 나라의 원수고 우리 인군이 아닌데
寧死忍加方喪服 차라리 죽은들 차마 상복을 입으랴.
聞倭皇睦仁之死彼酋脅令舊國臣民加緇爲服撤市禁歌令於衣服左胸蝶形裁黑布付之痛憤自歎 - 壬子六月十八日
일본 왕 목인(메이지 천황)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저들은 위협으로 명해서 옛 한국의 신민들에게 옷에 검은 것을 걸치게 하고 철시를 하고 노래를 금했으며 옷의 왼쪽 가슴에 검은 천으로 된 나비 모양의 것을 달게 하니 통분하여 스스로 탄식하다. - 1912년 6월 18일
註1 목인(睦仁) : 일왕 명치(明治)의 이름. 무쓰히도
註2 가마(加麻) : 상복은 입지 않고 두건만 쓰는 것으로 풀이함. 스승의 상내에 문생의 복상이 이와 같았음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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