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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13회] 사라진 머리, 강동리 도마상의 두부(頭部)는 왜 없어졌는가? 도마상 논쟁의 가장 큰 공백을 추적하다. - 풍화와 훼손, 역사의 흔적은 무엇을 말하는가? - 사라진 얼굴이 만든 해석의 갈림길. - 도마상 논쟁의 중심에는 ‘빈 공간’이 있다.
  • 기사등록 2026-06-20 02:32:08
  • 기사수정 2026-06-22 23: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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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인가. 보살상인가.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마상인가. 혹은 원삼국시대의 미지의 조형물인가. 고려시대 작품인가. 통일신라의 유산인가.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왕유동의 거대한 마애상 앞에 서면 수많은 질문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어떤 질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어 있는 목 위의 공간이다. 얼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어지는 모든 논쟁은 어쩌면 이 부재(不在)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머리가 남아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왕유동의 바위 아래 남겨진 질문

 

강동리 마애상은 영주 지역의 수많은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유독 특별한 존재로 꼽힌다.

 

 •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입상

 • 오랜 세월 견뎌온 풍화의 흔적

 • 멀리서도 시선을 끄는 장대한 규모

 

그러나 가까이 다가설수록 방문객들은 묘한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 몸은 있는데 얼굴이 없다.

 

마치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의도적으로 찢겨 나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실제로 문화유산 연구에서 얼굴은 단순한 외형적 요소가 아니다.

조형물의 시대와 성격, 조성 배경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다.

그렇기에 강동리 마애상의 두부(頭部) 소실은 단순한 훼손을 넘어 하나의 역사적 공백으로 평가된다.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얼굴은 시대를 말한다.

 

문화재 연구자들이 불상이나 보살상을 조사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얼굴이다.

 

 • 눈의 형태

 • 코의 높이

 • 입술의 표현

 • 귀의 길이

 • 머리 장식

 • 육계(肉髻)의 존재 여부

 

이러한 요소들은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통일신라 불상은 온화하고 이상화된 미소를 특징으로 한다.

석굴암 본존불의 얼굴은 그러한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 지방적 특색과 현실성이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보살상이라면 머리에 씌운 보관(寶冠)의 형태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결국 두부(頭部)는 단순한 머리가 아니라 조형물의 이력서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강동리 마애상은 가장 중요한 이력서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얼굴은 사라져 있었을까?

 

흥미로운 점은 두부(頭部)가 언제 없어졌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 가운데 원형을 보여주는 고지도나 옛 그림, 사진은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동리 마애상은 이미 훼손된 상태의 모습이다.

따라서 두부(頭部)가 조선시대 이전에 사라졌는지, 근대기에 훼손되었는지,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소실되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강동리 마애상의 가장 오래된 기록조차 이미 얼굴 없는 석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바람과 비가 만든 상처였을까?

 

강동리 마애상이 위치한 곳은 오랜 세월 자연환경에 노출된 암벽이다.

 

 • 여름철 집중호우

 • 겨울철 동결(凍結)과 융해(融解)

 • 끊임없는 풍화작용(風化作用)

 

암석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섬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은 균열이 수백 년 동안 반복되면 거대한 암석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국내 여러 마애불에서도 얼굴 일부가 마모되거나 손가락이 탈락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강동리 마애상의 두부(頭部) 역시 긴 세월의 풍화 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도 남는다.

 

 • 왜 하필 얼굴만 완전히 사라졌는가?

 • 왜 몸체는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가?

 

이 질문은 자연 풍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백을 남긴다.

 

 

사람은 때로 얼굴을 지운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 조형물의 얼굴은 자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석불에서도, 세계 여러 지역의 종교 유적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 얼굴은 상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존재를 부정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종종 얼굴부터 제거했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과 방문객들은 강동리 마애상 역시 인위적 훼손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머리를 제거했는지에 대한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역사는 상상보다 증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증거는 아직 침묵하고 있다.

 

 

조선의 억불정책과 연결할 수 있을까?

 

강동리 마애상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이다.

 

 • 조선은 건국 이후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 그 과정에서 불교는 국가의 중심 무대에서 밀려났다.

 • 사찰이 폐쇄되고 승려의 활동이 제한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강동리 마애상의 훼손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강동리 마애상의 두부(頭部)가 조선시대에 파괴되었다고 기록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억불정책이라는 큰 역사적 배경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강동리 마애상의 두부(頭部) 소실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적 가능성과 역사적 입증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 석상을 비껴 갔을까?

 

영주 지역은 오랜 세월 수많은 역사적 격변을 겪어 왔다.

 

 • 왜구의 침입

 • 임진왜란(壬辰倭亂)

 • 병자호란(丙子胡亂)

 • 근대기의 사회 혼란

 • 한국전쟁 등 등

 

전쟁은 수많은 문화재를 파괴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전쟁으로 훼손된 불상과 석조물이 발견된다.

강동리 마애상 역시 이러한 시대를 지나왔다.

그러나 전쟁이 두부(頭部)를 파괴했다는 결정적인 흔적 역시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전쟁은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사라진 얼굴이 만든 해석(解釋)의 갈림길

 

만약 강동리 마애상의 두부(頭部)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오늘날 이어지는 많은 논쟁은 상당 부분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통일신라 양식인지?

 • 고려시대 작품인지?

 • 원삼국시대의 유물인지?

 • 보살상인지?

 • 불상인지?

 • 혹은 전혀 다른 조형물인지?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강동리 마애상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단서를 잃어버린 채 서 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결론

 

사라진 것은 머리였지만 남겨진 것은 역사였다.

 

강동리 마애상의 두부(頭部)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았다.

 

 • 오랜 세월의 풍화였는지?

 • 인위적 훼손이었는지?

 • 역사의 격변 속에서 사라진 것인지?

 

명확한 답은 아직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두부(頭部)의 부재는 단순한 결손이 아니라 강동리 마애상을 둘러싼 모든 논쟁과 연구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도 왕유동의 암벽 위에는 얼굴 없는 석상이 서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아주 오랜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원래 그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어쩌면 강동리 마애상의 진실은 남아 있는 몸체가 아니라, 이미 사라져 버린 얼굴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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