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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12회] 바위에 새겨진 손은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 - 강동리 마애상의 손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통일신라·고려 불상과의 비교 분석. - 도마상 논쟁의 핵심, 결국 손에 있다.
  • 기사등록 2026-06-13 01:13:20
  • 기사수정 2026-06-22 23: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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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왕유동의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상. 현재 문화재로는 '영주 강동리 마애보살입상'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일부에서는 '도마상'으로 불리며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연구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불교 조각에서 손은 곧 신앙의 언어이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강동리 마애상의 손은 왜 일반적인 통일신라·고려 불상과 다른 인상을 주는 것일까. 그 차이를 통해 도마상 논쟁의 핵심을 들여다본다.

손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왕유동.

수백 년 동안 산비탈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상은 오늘도 묵묵히 서 있다.

머리는 사라졌다. 얼굴도 없다. 눈도 코도 입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머문다.

 

  바로 손이다.

 

영주 강동리 마애보살입상, 이른바 '도마상' 논쟁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부분 역시 손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손이 일반적인 불상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화재계는 훼손(毁損)과 풍화((風化)로 인해 현재의 모습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손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불상의 정체는 손이 말해준다.

 

불교 조각에서 손은 단순한 신체 표현이 아니다. 불교미술에서는 이를 수인(手印)이라고 부른다.

수인(手印)은 부처의 가르침과 자비, 깨달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다.

 

석굴암 본존불의 오른손은 땅을 가리킨다.

이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이다.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한다.

 

비로자나불은 두 손을 맞잡은 지권인(智拳印)을 취한다.

관음보살은 시무외인과 여원인(與願印)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즉, 불상의 손은 조각가의 장식이 아니라 신앙적 메시지다.

그래서 미술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손을 통해 불상의 종류와 제작 시기, 종교적 의미를 해석해 왔다.

 

 

강동리 마애상의 손은 왜 주목받는가?

 

강동리 마애상을 바라보면 첫인상부터 일반적인 불상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진다.

현재 남아 있는 오른손은 손가락의 형태가 비교적 분명하다.

왼손 역시 아래로 내려와 있다.

 

문제는 그 모습이 기존 불교 조각에서 흔히 보이는 수인(手印)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현존 상태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다.

원형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년 이상의 풍화와 훼손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모습만 놓고 보면 일부 연구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통일신라 불상과 비교해 보면

 

통일신라는 한국 불교조각의 절정기로 평가받는다.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한 통일신라 불상들은 매우 정교한 비례와 완성도를 보여준다.

손 역시 마찬가지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어떤 수인(手印) 인지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강동리 마애상은 다르다.

현재 남아 있는 손만으로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인지, 설법인(說法印)인지, 여원인(與願印)인지 명확히 판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통일신라 정형 양식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풍화가 심한 상태에서 현재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 지적한다.

 

 

고려 마애불과는 닮은 점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고려시대 마애불(磨崖佛)과 비교할 경우다.

고려 후기 지방 마애불(磨崖佛)들은 통일신라 불상에 비해 표현이 단순하다.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까닭에 세부 조각도 상대적으로 간략하다.

 

강동리 마애상 역시 거대한 규모, 암벽 조각 방식, 단순한 의복 주름 등에서는 고려 마애불(磨崖佛)과 유사성을 보인다.

실제로 문화재 당국이 고려시대 마애보살입상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손 부분만큼은 여전히 논쟁이 남는다.

일반적인 고려 마애불(磨崖佛)에서도 흔히 확인되는 수인(手印)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라진 머리만큼 중요한 것은 사라진 손가락이다.

 

도마상 논쟁은 오랫동안 머리에 집중되어 왔다.

실제로 얼굴은 불상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머리가 사라진 현재 상황에서는 다른 단서를 찾아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이다.

 

만약 정밀 3차원 스캔을 통해 현재 보이지 않는 조각 흔적이 발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손가락의 원래 형태가 복원될 가능성도 있다.

그 경우,


  불교 수인(手印)인지?

  지방 양식인지? 

  다른 종교적 상징인지?


보다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질 수 있다.

 

 

도마상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도마상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바로 이 손에 주목한다.

그들은 일반적인 불교 조각에서 보기 어려운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현재까지 손 모양 만으로 특정 종교를 입증한 학술적 연구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즉,

손이 독특하다는 사실과, 그것이 곧 도마상이라는 결론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역사는 추정을 허용하지만 단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역사는 질문을 남긴다.

 

강동리 마애상의 손은 분명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그 비범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시대 지방 장인의 독창적 표현일 수도 있다.

후대의 훼손이 만들어 낸 착시(錯視) 일 수도 있다.

혹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해석의 단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거 하나다.

오랜 세월 암벽에 새겨진 그 손은 지금도 연구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를 형상화하고 있는가?"

 

도마상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해답은 사라진 머리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읽지 못한 그 손끝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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