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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無知)와 어리숙함의 콜라보


  연해주 지역이 러시아 영역이 된 것은 1860년 북경조약을 통해서다. 영국과 프랑스의 침략으로 북경이 점령되고 원명원(圓明園)이 불에 탔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역할을 중재한 대가로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선과 러시아가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게 된다. 이때 녹둔도가 러시아 영토가 돼 버렸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조선은 1887년(1889년) 고종(高宗)이 러시아 공사 베베르에게 녹둔도 반환을 요구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조치였다. 이후 국권피탈로 잊혀진 녹둔도는 1984년 북한과 소련 간에 이 문제를 논의하지만 미해결로 남는다. 대한민국 정부도 한·소 수교 후 1990년 서울주재 러시아 공사에게 녹둔도의 반환을 요구한 바 있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녹둔도는 현재 러시아의 중요 군사기지가 되어 있다.

 

  녹둔도를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러시아에 넘겨준 요인 중에는 막연하고 잘못된 신념과 지식의 한계도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21년(1884년) 6월 17일자 기록에 국경을 개척하고 둔전을 일구는 일에 힘쓸 것 등의 시무책을 진달하는 부호군 지견룡이 올리는 상소가 나온다.

 

  지견룡의 의견은 이렇다. 경흥(慶興) 건너편 블라디보스톡 등 1천여 리 땅이 러시아에 속해 있는데 러시아는 중국과 화목하지도 않고 군사적 행위도 없었음에도 그 땅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그럴진대 조선은 중국과 옛날부터 협화(協化)의 의리가 있고 또 그 지역이 생소한 땅이 아니니 간청하면 청나라에서 허락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견룡은 청나라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청하라는 말로 마무리 한다. 간청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견룡의 상소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명확하다. 당대 지견룡은 물론 고종과 조정 신료들은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몰락하면서 1860년 북경조약이 체결된 지 20여 년이 지난 후까지도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가 연해주를 어떻게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부재는 녹둔도가 어떻게 러시아 영토가 되었는지에 대한 무지와 그대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는 또한 당시 동아시아의 이권에 발을 내딛고 있었던 다른 열강들이 녹둔도 양도에 대하여 오히려 당사자인 조선 정부보다도 훨씬 더 정밀하며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더 뼈아프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초대 조선 주재공사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13년간 두 차례에 걸쳐 주 조선 프랑스 공사로 근무했다. 콜랭 드 플랑시 공사가 1890년 6월 10일에 ‘러시아의 조선 보호국화 소문(정치국 극동가 제157호)’에 관한 공문의 내용에는 1860년 베이징 조약문에 녹둔도를 러시아에 양도한다는 문구가 없음을 보고하고 있다.

 

  “…(중략)…문제의 섬은 북쪽에 위치한 두만강(du fleuve Tumen) 어귀의 녹둔도(Nok-toun to)로 그 지역 수도인 블라디보스톡(Vladivostock)이며 소유권이 양도되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함께 협의한 청국 대표에 의하면 이곳은 1860년부터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으므로 자신이 판단하기에는 이러한 정보는 현안으로 삼을 필요도 없으며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식적인 조선 지도와 프랑스 선교사 지도 그리고 일본 참모부 지도를 참고한 결과 이 주장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고 드립니다. 지도에 녹둔도는 조선 영토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60년 북경에서 이그나티에프 장군(Gal Ignatief)과 공친왕(Prince Kong)이 체결한 조약문에도 이 섬을 러시아에 양도한다고 명시한 구문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녹둔도가 조선에 귀속되어 있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후 대륙과 분리되었던 두만강 어귀의 일부분에 섬의 모래가 충적되면서 대륙과 연결되어 이제는 시베리아에 붙은 일종의 곶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한 시점은 제가 모르지만 이처럼 지형의 변화가 발생한 이후로 러시아는 자연 현상에 의해 대륙에 붙어버린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은 몇 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해결책을 찾아 현 상황의 근본적인 우려를 종식할 수 있을까요?……”(『한국근대사자료집성』 14, 프랑스외무부문서4 조선Ⅲ·1890, 정치공문 1888~1896, 조선 1890 권3 콜랭 드 플랑시, [66] 러시아의 조선 보호국화 소문).

 

  제삼자인 프랑스조차도 이렇게 정교한 관찰과 분석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보퉁이도 내려놓고 옷고름도 풀어놓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꼬.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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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17 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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