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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의 좌목

                              악연(惡緣)도 처음엔 평범하다


  앞서 녹둔도 전투를 기록한 그림으로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가 남아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장양공 이일(李鎰) 의 손자인 경상좌수사 이견(李汧, 1618∼?)이 조부의 공훈을 기념하고 후세에 알리고자 제작한 것으로 일반적인 계회도가 아니라 조상의 행적을 기리는 목적으로 제작한 기록화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화면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에 전서체로 쓴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라는 제목이 있고, 중앙부는 전투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채워졌으며, 하단에 좌목(座目)이 딸린 계축(契軸) 형식이다.

 

 상단의 제목에 있는 장양공(壯襄公)은 북병사 이일의 시호(諡號)다. 정토(征討)는 정벌(征伐), 토벌(討伐)과 같은 말이며 시전부호(時錢部胡)는 시전 부락 오랑캐라는 뜻이다. 정리하면 ‘장양공이 시전 부락 오랑캐를 토벌하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화면 하단의 좌목에는 대장 이일을 비롯해 그 휘하의7명의 성명과 22명의 좌위(左衛) 소속 군병, 24명의 우위(右衛) 소속 군병의 성명이 나와있다.

 


<右火烈將 及第 李舜臣 우화열장 급제 이순신>이라는 부분이 보인다.

 右火烈將 及第 李舜臣

 우화열장 급제 이순신

 

 북병사 이일의 여진족 토벌대는 왼쪽의 좌위(左衛)와 오른쪽의 우위(右衛)로 이뤄졌다. 이순신은 우위에서 우화열장이란 직책으로 참전했다. 우화열장은 ‘우측 화기 부대의 대장’으로 풀이할 수 있고 그 뒤에 붙은 급제(及第)는 관직이 박탈된 사람을 일컫는다. 이순신은 전투에 참여할 당시 백의종군하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적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참전한 장수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이름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순신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조선의 장수, 원균(元均, 1540~1597)이다. 


원균의 이름이 나온 부분

        

 一繼援將 通政大夫 鍾城都護府使 元均 字平仲 原州人 

 일계원장 통정대부 종성도호부사 원균 자평중 원주인

 

 명단을 보면 일계원장(一繼援將)과 이계원장(二繼援將) 이렇게 두 직책이 보이는데, 역시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우위(右衛) 소속이다. 선봉장부터 이름을 써놓은 걸 보면 아마도 후방의 지원부대장으로 짐작된다. 통정대부는 정3품 직급을 가리킨다. 함경도 종성 지역에 있었던 행정관청인 도호부의 장관쯤으로 보면 되겠다. 원균이란 이름 밑에는 자(字)가 평중(平仲)이고, 원주 출신이라는 것도 적혀 있다. 원균이 이순신과 같은 급의 장수로 참전했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북병사가 이끈 제2차 여진족 토벌은 빛나는 승전으로 기록됐다. 《실록》에는 여진족 토벌 작전 자체에 관한 기록은 없고, 전투가 끝난 뒤의 상황만 다음과 같이 나온다. 

 

 “지난봄에 북병사(北兵使) 이일(李鎰)이 시전(時錢) 부락을 섬멸하여 3백여 급(級)을 참괵(斬馘)할 때, 마침 날씨가 몹시 추워 장병(將兵)들의 손이 터지고 살이 찢어져 그 고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바로 잔치를 내려 위로해야 하는데 내가 까마득히 잊어 말하지 못하고 유사(有司) 또한 감히 품(稟)하지 못하였다. 지금 5개월이 지났는데 한 잔의 술도 내리지 못하였으니, 너무도 온당치 못하다. 내 생각에는 속히 한 관원을 내려보내 잔치를 열어 그들을 위로하고 아울러 나의 뜻을 알렸으면 한다. 만약 관원을 보내는 것이 폐가 된다면 그곳 감사에게 명하여 잔치를 내리도록 하는 것이 어떠할지, 비변사에 문의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감사의 일행에는 따라가는 사람이 매우 많아 그 폐단이 더욱 클 것이니 경관(京官)을 보내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 하고 형조 정랑 이대해(李大海)를 차송하였다. - 선조실록 22권, 선조 21년 5월 20일 임인 두 번째 기사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니 잔치를 열어 치하해주라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전투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재기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사실이다.


(위 기사는  동시대 예술 플랫폼 "아트렉처 ARTLECTURE"의 '백의종군에서 명예회복까지.....이순신의 여진족 토벌 by 김 석'을 참고하였습니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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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10 16:55:02
  • 수정 2022-11-10 16: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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