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녹둔도 위치에 관한 최근 고증
심각해지는 영토분쟁 속에서 점차 주목을 받고 있는 녹둔도는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앞서 녹둔도 연재 1~5에서 본 바와 같이 지리적, 역사적, 국제관계학적으로 예민하기도 하거니와 강대국들 사이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교적 최근에는 녹둔도의 위치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다.
2020년 4월 26일, 해군사관학교(교장 중장 박기경)는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녹둔도(鹿屯島)’ 실측 근대지도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박준형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48 전문군무경력관가군)이 충무공 이순신 탄신 제475주년에 앞서 공개한 이 지도의 이름은 「일로국경부근지도(日露國境附近之圖)」이며, 1911년 9월 일제가 실측해 그린 지도이다.
지도는 가로 79.5㎝, 세로 122.5㎝의 크기로 반투명 투사지에 채색돼 있으며 보관상태도 양호하다. 오른쪽 아래에 방위표와 ‘2만분의 1’ 축척이 표기돼 있고, 그 아래에 범례가 표로 정리됐다. 범례 왼쪽에는 ‘명치사십사년 구월 실측(明治四十四年 九月 實測)’이라고 적혀 있어 이 지도가 1911년 9월에 실측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 관장은 일제 강점기 한반도 연구를 위해 평소 일본이 제작한 근대 한반도 지도를 수집해 왔다. 이 지도를 일본에서 입수한 박 관장은 “러시아와 접경 지역인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지역은 일제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며 “그런 점에서 당시 한반도에 주둔했던 일제의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가 이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로국경부근지도」는 일반 지형도와 달리 군사적 목적에 의해 제작된 특수지도이다. 이 지도는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제작한 1926년 ‘5만분의 1’ 축척 지도보다 시기적으로 15년이나 빨리 제작되었고, 축척도 ‘2만분의 1’이라는 점에서 녹둔도를 더욱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로국경부근지도(日露國境附近之圖)’ 범례. /사진제공=해군사관학교
2018년부터 충무공 이순신 북방유적의 남ㆍ북ㆍ러 공동발굴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백종오 교수(한국교통대학교 박물관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는 “녹둔도 토성의 위치는 ‘동국여지승람(15세기)’에 처음 기록으로 나타나며 이후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관북지’, ‘경흥부읍지’ 등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위치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로국경부근지도」는 이순신이 활약했던 녹둔도 전투(1587년)의 주 무대였던 녹둔도 토성의 위치를 좀 더 확실하게 고증하는데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백 교수는 당시 “이 지도를 처음 봤을 때 나라가 힘이 없으면 지도 한 장 만들지 못한다는 통한을 느꼈다. 지도에 표기된 두만강이 아닌 ‘도문강(圖們江)’이라는 지명에 나타나듯이 우리 손으로 우리 주권을 지키지 못하면 지도 한 장에도 타국의 주장이 반영돼 결국 자신의 역사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지도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정신과 주권수호의 중요성이 우리 국군 장병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며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준형 관장은 “이순신은 1587년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녹둔도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전란을 미리 대비하였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일로국경부근지도」에 ‘성장(城場)’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것은 ‘녹둔도 토성(土城)’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해군사관학교 박준형 박물관장이 일본에서 입수, 공개한 ‘녹둔도’.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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