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청주곽씨 시향제(時享祭) 탐방기

가을이 더욱 깊어가는 지난 10월 23일 청주곽씨대종회(회장 곽창수)에서 2022년도 시향을 올린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10월 문화의 달에 맞춰 좋은 그림이 될만한 게 없을까 찾던 기자는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기분전환도 될 것 같아 평소 친분이 있던 존경하는 곽노권 회장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장소는 청주 상당구 명암동 산 3-1 상당사(上黨祠).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후손들의 정성에 하늘이 응감이라도 하신건지 날씨가 화창하고 쾌적하여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도심에서 벗어난 깔끔하고 단정한 사당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150여 명의 종친들이 모였고 곧이어 시월 상달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함께 경건하게 참배하며 정성을 다해 시향제를 봉행하였습니다.
분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내 시조공에는 초헌관 창수(장단), 아헌관 창신(백동), 종헌관 노현(여주),
문성공에는 초헌관 인상(신계), 아헌관 노승(문호), 종헌관 의신(원곡)
진정공에는 초헌관 채진(간매), 아헌관 호식(여주) 종헌관 춘영(신대)
연담공에는 초헌관 진영(청주), 아헌관 노필(백동), 종헌관 노태(화산)
설단은 순현공과 장원공, 상당군에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대축관은 노갑(옹동), 정일(백동), 집례는 사무총장 덕용 등.
(시향이 종료된 후 그랜드플라자 청주호텔에서 제 50차 정기총회를 갖고 정관 개정과 사업계획, 결산, 장학사업, 시상 등을 했습니다.)

시향의 계절
시월 이맘때면 전국의 각 문중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시향을 지냅니다. 여기서 시향 이란 한식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관행적으로 칭하는 것으로, 시제(時祭), 시사(時祀)라고도 합니다. 묘소에서 지낸다고 하여 묘제(墓祭), 묘사(墓祀),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 하며, 일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세일제(歲一祭), 세일사(歲一祀)라고 합니다. 상달은 음력 시월로, 그해의 햇곡식을 신이나 조상에게 올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입니다. 그 해에 수확한 첫 곡식을 올리는 것을 조상을 위하여 바치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정성이라고 생각한 선조들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상을 기억하고 가문의 역사를 통해 현대와 과거의 소통의 의미를 찾는 뜻깊은 전통도 날로 과학화, 현대화하는 문명의 속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바쁜 현대인들은 제사란 일 년에 한두 번 체험하는 귀찮은 이벤트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활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사니 시제니 하는 것이 더 이상 감동도 공감도 불러오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딱히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냥 시절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럼 과연 수백 년 아니 몇 년의 차이를 두고도 절감되는 조상과 후손, 나아가 세대와 세대 간의 메꿔지지 않는 이 ‘단절의 위기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풀기 어려운 일입니다. 문득 생각나는 시경 구절이 있습니다.
詩云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故 君子 以人治人, 改而止.
시(詩)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벰이여, 그 법이 멀지 않도다.’고 하니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베는데 흘겨보고 오히려 멀다고 하나니 군자는 사람으로 사람을 다스리다가 고치거든 그치니라.
(『중용』 제13장에서 인용하여 도는 자기 자신에게 있지 다른 데에 있지 않으며, 군자가 사람을 다스리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미루어 남을 다스리면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 법이 멀지 않도다'. 마치 선문답같기도 하고 퀴즈 같기도 한 구절입니다. '그 법'. 수천년을 넘어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그 법은 있을까요?
아마 상당사에 모인 종인들 아니 가까이로는 우리 가족, 친지, 더 나아가서는 사회와 국가에 속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 안에 이미 그 법이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시향을 마치고 나서 종친들이 다함께 사진 찰칵
우리는 청곽(淸郭)이다.
각지에서 모였지만 요란하지 않았고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청주곽씨 시향제를 참관하면서, 마치 청주곽씨 선열들의 DNA가 천년을 넘어 살아나 후손들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감의 근원이 되는 청주곽씨 선열의 뿌리는 과연 어떤지 궁금하여 대강 추려보았습니다.
청주 곽씨의 유래는 중국에서 이민 온 성씨임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곽씨는 우리나라의 金ㆍ李ㆍ朴과 같이 그 姓勢가 큰 씨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곽씨는 周나라 文王의 막내 동생 괵숙(虢叔)에서 그 유래를 말한다고 하나 너무도 까마득한 옛일이라 考證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당나라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분양왕(곽자의)의 손자가 사신으로 신라에 왔습니다. 이 때 현종은 숙종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촉(蜀) 땅 산가벽지로 숨어들어 무료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서기756년(천보15년 병신년)에 신라 경덕왕이 현종을 위로할 사신을 보냈더니 이에 현종은 그 후의에 감사하여 직접 10운시를 짓고 손수 편지를 써서 시(詩) 잘 짓는 사람을 뽑아 회례사로 보내게 됩니다. 이 때 뽑힌 사람이 당나라시대 일등공신인 곽자의의 손자였는데 그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이 특사가 그 소임을 다하고 되돌아 갈 때 그가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생각하여 그의 아들 하나를 서원소경에 살게 하였습니다.(註:이 시대는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으로 추정). 使去傳風敎(사거전풍교:사신이 세상의 풍습을 전하고 갔다.)라는 시의 구절이 동국통감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가 곧 청주곽씨의 성과 관향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청주 곽씨의 시조(始祖)인 신라 헌강왕조 시중 상(祥)
그 후 세대가 멀고 아득하여 선조의 이름은 잃어버려 전해오지 못하다가 후세에 시중이신 상(祥)이 신라의 헌강왕을 섬겼는데 문장이 능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청주 곽씨의 시조(始祖)인 신라 헌강왕조 시중 상(祥)공이십니다. 이분(祥公)은 신라 49대 憲康王(재위 875-886년)朝에 侍中(종1품)을 역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文章과 詩를 잘 지어 德望이 높았으며 당대의 碩學 孤雲 崔致遠과도 交遊한 것으로 문헌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주 곽씨(淸州 郭氏)는 고려초(高麗初)부터 많은 인물(人物)을 배출(輩出)하였으며, 조선시대에서도 14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습니다.
그 중 세상과 후손들로부터 존경과 기림을 받고 있는 분들을 들어보자면, 4세 중시조이시며 고려 성종때 문과에 급제, 한림학사(翰林學士) 형부상서(刑部尙書: 정3품 벼슬. 법무부 장관) 참지정사(參知政事, 종2품)를 지내신 문성공(文成公) 곽원(郭元, 970년경-1029), 洪州牧使(홍주목사)를 거쳐 禮部員外郞(예부원외랑)를 지내셨으며 고려 예종과 군신의 관계를 초월한 심교(深交)로 유명하여 고려사 열전에 기록된 7세 진정공(眞靜公) 곽여(郭輿,1058-1130), 大家의 서체로 이름난 11세 연담공(蓮潭公) 곽예(郭預,1232-1286) 등이 계십니다. 특히 연담공은 1255년(고종 42) 문과에 급제, 원종 4년 첨사부록사로서 일본에 가서 왜구(倭寇)의 중지와 고려인 송환을 요청하였고, 충렬왕 때 좌부승지, 국자감대사성을 역임하고 1286년에 지밀직사사로서 원나라에 다녀오던 길에 병사하신 고려의 충신이십니다. 청주에 있는 ‘상당사(上黨祠)’는 청주곽씨의 위 3위(곽원, 곽여, 곽예)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이외에도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순절한 곽린(郭麟), 고려 공민왕 시대의 충신이자 두문동 72현(賢)의 한사람으로 기억되는 곽추(郭樞)등 많은 문장가와 충신이 배출되었습니다.
(이상은 청주곽씨대종회 홈페이지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김춘산 (c44567@naver.com)
ⓒ아리랑타임즈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arirangtimes.com/news/view.php?idx=1312